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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온아의 기록
여러 편의 이야기가 담긴 시 모음집 '마음챙김의 시'를 읽고 본문
우리는 가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어떤 시와 만난다.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문장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어느 날 어떤 문장을 읽고 내가 기다려온 문장이 바로 이것임을 깨닫는다'
- 인생의 역사(신형철) 中
나에게 시란 학창시절 단어의 함축적인 의미를 찾고, 운율을 발견하며 외워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보다 더 어린 초등학생 때는 그저 짧은 글이었고 의성어나 의태어가 들어가면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성인이 되어서는 쉽게 읽히는 시가 있는 반면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시가 있었다. 시집을 읽겠다 다짐하고 한 편의 시집을 읽기 시작하면 결국은 나랑 안 맞네 하고 중단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마음챙김의 시'도 큰 기대가 없었다. 그저 유명한 시인 '류시화'라는 이름을 믿고 읽었다.
시를 읽기 전 내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놔둘 것. 의미를 찾고자 하지 말 것. 의미를 찾고 싶을 땐 2회독에서 찾을 것. 하루에 다 읽지 말고 나눠서 조금씩 읽을 것.'
나는 이 책을 10일 동안 읽었다. 10일 동안 읽으면서 다른 책들도 함께 읽었다. '행복의 지도(에릭 와이너)'와 '인생의 역사(신형철)' 등 시를 읽으면서 다른 책들을 읽는 데 색다른 경험을 했다.
옳고 그름의 생각 너머 (잘랄루딘 루미)
옳고 그름의 생각 너머에 들판이 있다.
그곳에서 당신과 만나고 싶다.
영혼이 그 풀밭에 누우면
세상은 더없이 충만해 말이 필요 없고
생각, 언어, 심지어 '서로'라는 단어조차
그저 무의미할 뿐.
시인소개 171p 잘랄루딘 루미
1207~1273 페르시아 신비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 젊었을 때 대학자의 지위에 올랐으나, 37세에 방랑하는 탁발승 샴스 알딘 타브리즈와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종교학자에서 신비주의 시인으로 변신했다. 대표 시집 『영적인 마스나위』는 페르시아어로 된 가장 뛰어난 문학으로 평가받는다.
처음 이 시를 읽을 때 나는 '행복의 지도(에릭 와이너)'를 읽고 있었다. 그래서 '옳고 그름의 생각 너머'가 행복의 또 다른 정의가 될 수 있겠다 생각했다. 나라마다 행복의 정의가 다르다. 사실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사랑의 크기 일수도 있고, 부의 축적, 많은 사람들과의 교류, 가족과의 시간일 수 있다. 그때 옳고 그름, 행복의 의미가 어떤지와 상관없이 "영혼이 그 풀밭에 누우면 세상은 더없이 풍만해 말이 필요 없"는 그 상태가 행복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물론 시인소개에서 보면 종교학자였던 시인의 특성에 따라 종교적인 의미를 담은 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읽었다는데 누가 뭐라할 수 있을까.
웬델 베리의 '정화'를 처음 읽었을 때 "충직한 나무들에게 나는 고백한다. / 나의 죄를. / 나에게 주어진 행운을 생각하면 / 나는 충분히 행복해하지 않았다." 부분에 표시를 했다. 평소 나에게 주어진 행운을 생각하며 감사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으나 충분히 행복해하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감사하다와 행복하다는 다른 의미다. 감사는 "타인"에게 전달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행복은 "내"가 주체다. 나는 주어진 많은 행운들에 충분히 행복해했는가?
두 번째 '정화'를 읽으면서 봄이 시작되는 것에 대한 경이로움과 겨울 동안의 여정을 통해 내가 밝았을 때와 어두웠을 때의 삶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어두웠을 때의 내 모습, 구멍에 내가 숨기고자 하는 것들이 '성장과 여정을 마무리한 것', '낡은 것인 새것으로 피어'나기 위한 과정이라고 나의 마음을 위로해 본다.
읽자마자 동네방네 추천했던 시 자넷 랜드의 '위험들'이다. "사랑하는 것은 / 그 사랑을 보상받지 못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 사는 것은 죽는 위험을, / 희망을 갖는 것은 절망하는 위험을, / 시도하는 것은 실패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라는 부분은 그 어느 자기계발 서적보다 와닿았다.
자기개발 서적이나 힐링에세이를 읽으면 "실패할까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쁜 소리 들을까 봐 주저하지 말아라"라는 말을 자주 볼 수 있다. 마음의 부담이나 짐을 내려놓으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시는 이미 난 위험을 여러 번 감수하고 있다고 알려준다. 이제부터 감수해라가 아니라 늘 해왔던 것처럼 감수해라라고 말하는 것이 뜻밖에 만난 나의 문장이었다.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만이 오직 / 진정으로 자유롭다." 나의 모든 선택에는 위험이 뒷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선택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둘을 떼어놓을 수 없다.
흉터 (네이이라 와히드)
흉터가 되라.
어떤 것을 살아 낸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네이아라 와히드의 '흉터'는 나 혼자 읽었을 때 그저 스쳐가는 시였다. 하지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가장 인상 깊었던 시를 공유하다 다시 읽다 보니 나에게도 의미 있는 시가 되었다.
상처가 나면 아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물었지만 남아있는 흉터는 보기 흉한 것이니 어떻게는 가리거나 지우기 위해 시술을 받는다. 하지만 그 상처가 그 사건이 그 사고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트라우마'를 극복했다고 생각하다가도 다시 마주치면 그때의 감정이 떠오를 때가 있다. 사라지지 않은 흉터다. 그 흉터가 안 사라지고 남아있다는 사실보다 그 흉터로 인해 내가 변한 것들을 생각한다면 그 흉터를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 없었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이미 생긴 것으로 다 아물기를 기다리고, 안 아물더라도 그 흉터에서 자유롭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시를 읽었다.
잎사귀 하나 (까비르)
잎사귀 하나, 바람에 날려
가지에서 떨어지며
나무에게 말하네.
'숲의 왕이여, 이제 가을이 와
나는 떨어져
당신에게서 멀어지네'
나무가 대답하네.
'사랑하는 잎사귀여,
그것이 세상의 방식이라네.
왔다가 가는 것.'
숨을 쉴 때마다
그대를 창조한 이의 이름을 기억하라.
그대 또한 언제 바람에 떨어질지 알 수 없으니,
모든 호흡마다 그 순간을 살라.
까비르의 '잎사귀 하나'도 '흉터'처럼 다른 사람이 좋다고 한 시로, 같이 공유하면서 나에게도 의미가 생겼다. 이 시가 좋다고 한 사람은 잎사귀를 '관계'로, 나무를 '나'로 읽었다고 했다.
여름의 나무는 잎사귀가 가장 풍성할 때고, 가을은 그 여름의 잎사귀가 떨어지는 시기이다. 여름은 관계가 활발했던 시기이고 가을은 그 관계가 정리되는 시기이다. 한 때 가장 많이 만나고, 소통했던 인연이 어느 순간 멀어진 경험이 누구나 있다. 중고등학생 3년도 그랬고, 대학교 4년도 그랬고 사회생활에서도 그랬다. 나를 창조한 이는 물리적으로 부모님이지만 정서적인 면이나 관계성을 따졌을 때 나를 만난 모든 사람들이 나를 창조했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잎사귀이고 누군가를 창조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호흡마다 그 순간을 살라."는 말은 모든 인연을 소중히 하고 최선을 다하라라고 읽을 수 있다.
"시절 인연"이라는 말은 따뜻하기도 하면서 아픈 말이기도 하다. 그때의 나를 회상할 수도 있는 단어면서 그때로 돌아갈 수 없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시절이 있기에 현재의 내가 있는 것으로 세상의 방식에 계속 계속 적응해가야겠다.
"아이에게 말한 적 있는가. / 내일로 미루자고. / 그토록 바쁜 움직임 속에 / 아이의 슬픈 얼굴은 보지 못했는가." 시의 6연을 읽고 나는 잠깐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했다. 너무 바빴던 부모님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돌아보았다. 너무 바쁜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부모님이 어디 가자고 하면 지금 너무 바빠서, 지금 너무 정신없어서, 지금은 조금 쉬고 싶어서란 말을 많이 했다. "아이의 슬픈 얼굴"은 아니었겠지만 부모님은 어떤 감정이었을까.
한국에서는 "하루하루를 바쁘게 뛰어다니는"건 당연한 거다. 바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처럼 느껴진다. "누군가에게 인사를 하고서도 / 대답조차 듣지 못할 만큼" 바빠도 바쁜 사회니 그러려니 하고 넘긴다. 하지만 나는 "하루가 끝나 잠자리에 누워서도 / 앞으로 할 백가지 일들이 / 머릿속을 달려가는가."를 반복한다. 잠이 들 때는 잠에 집중하고 마무리 지어야 하는데 마무리를 못 짓는 느낌이다. 심호흡하고 한 박자 쉬고 평온한 상태를 만들어야 하는 걸 알면서도 잘 안된다.
"삶은 달리기 경주가 아니다. / 속도를 늦추고, / 음악에 귀 기울이라. / 노래가 끝나기 전에." 알고 있으면서도 잘 안된다.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이 순간에도. 하지만 언젠가,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더 느리게 춤추는 법을 배워 내 모든 근육들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
"이 연필 안에는 / 한 번도 씌어지지 않은 단어들이 / 웅크리고 있다. / 한 번도 말해진 적 없고 / 한 번도 가르쳐진 적 없는 단어들이." 사랑을 이야기할 때 "사랑해"라는 말로는 부족한 더 큰 감정을 말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행복함과 감사함, 소중함 이 모든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느껴지지만 어떻게 표현할지 모를 순간이 W. S. 머윈 "연필"에 담겨있다.
답이 있기는 하되 그것이 질문만큼 중요하지는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적어도 시에서는 그렇다. 위대하다는 시인들의 시를 읽으면서 그들의 답에 놀라본 적이 별로 없다. 그 답은 너무 소박하거나 반대로 너무 거창했다. 그러나 누구도 시인들만큼 잘 묻기는 어렵다. 나는 그들로부터 질문하는 법을, 그 자세와 열도와 끈기를 배운다.
- 인생의 역사(신형철) 中
"연필"에서 말하고자 하는 단어가 무엇인지 답을 내리진 않는다. 그저 질문한다. "무슨 문자이길래 그토록 꺼내기 어려울까 / 무슨 언어일까. / 내가 그 언어를 알아차리고 / 이해할 수 있을까. / 모든 것들의 진정한 이름을 알기 위해." 사람마다 꺼내고자 하는 단어는 다를 것이다. 내가 꺼내어 쓰고 싶은 단어, 마음, 생각 이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할 때 이 시가 떠오를 것 같다.
에이다 리몽의 "비옷"은 마음챙김의 시 중에서 나를 가장 울컥하게 만들었다. 영화 속 한 장면이 내 앞에서 펼쳐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아, 나는 생각했다. / 내 일생이 엄마의 비옷 아래 있었구나. / 왜 그런지 모르지만 내가 결코 비에 젖지 않은 것이 / 경이로운 일이라 여기면서."를 읽고 지금까지 나의 부모로 있어 준 두 분을 떠올렸다. 앞으로도 평생 나의 부모로 계실 두 분은 나에게 "주어진 행운"이다. 비옷 아래 있지 못한 사람도 있기에 나는 이 행운에 충분히 행복했는지 자문한다.
이 시를 읽고 있던 시기에 "굿파트너"라는 드라마를 함께 보고 있었는데 주인공 차은경 변호사와 그녀의 딸 재희 이야기가 겹쳐 보였다. 드라마에서 엄마가 딸에게 주고 싶었던 사랑과 딸이 엄마에게 받고 싶었던 사랑의 차이를 보여준다.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나 또한 엄마에게 받고 싶었던 사랑이 있었다. 하지만 이 시를 읽고 생각해 보니 엄마의 비옷 아래서 바랐던 사랑인 것 같아 슬펐다. 비옷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나. 과연 평생을 그 비옷을 알 수 있을까.
시 내용과 직접적인 내용이 같진 않으나 이 장면이 떠올랐다.
우리는 시로 고백을 할 수도 있고 묘사를 할 수도 있으며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이를 근거로 영어권에서는 lyric poetry, descriptive poetry, narrative poetry 하는 식으로 시를 분류하기도 한다. 순수하게 한 가지 성분만으로 된 시도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세 요소가 적절히 섞여서 한 편의 시를 만든다.
- 인생의 역사(신형철) 中
시 한 편 한 편에 많은 감정이 나를 스쳐갔다. 때로는 너무 벅차서 책을 덮고 눈을 감았다. 소설이나 에세이 같은 산문은 인물에 감정이입을 한다. 시는 내 과거를 돌아보게 한다. 누군가 말하길 시를 읽기 위해서는 경험해야 한다고 한다. 경험이 많을수록 시가 말하고자 하는 걸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에 나도 동의한다. 산문은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정도 감정을 알아차리거나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운문은 모르면 모르는 것이다. 학문적으로 배워야 하는 순간 아니면 내가 이해하지 못한 건 이해 못 하는 것으로 남아져 있다.
봄이 벚나무에게 하는 것을 너에게 하고 싶어 -마음챙김의 시, 류시화 156p
시를 읽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이고, 세상을 경이롭게 여기는 것이며, 여러 색의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는 마음챙김의 소중한 도구이다.
봄이 벚나무에게 하는 것을 너에게 하고 싶어 -마음챙김의 시, 류시화 169p
살아온 날들이 살아갈 날들에게 묻는다. '너는 마음챙김의 삶을 살고 있는가. 마음놓침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당신이 누구이든 어디에 있든 한 편의 시를 읽는 것은 '속도에 대한 세상의 숭배에 저항하는 것'이며, 숱한 마음놓침의 시간들을 마음챙김의 삶으로 회복하는 일이다.
내가 갖고 싶은 눈이 있다. 셜록홈즈의 남들보다 깊이 관찰하는 눈과 시인의 눈이다. 시인은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르게 표현하는 힘이 있다. 내 눈에는 그저 비를 막아주는 비옷일 뿐인데 비옷에서 엄마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시를 읽고 난 뒤 비옷은 나에게 엄마의 사랑이 된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하나의 사물에 다양한 의미를 붙여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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