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온아의 기록

(※스포주의) 인생소설이지만 향기롭게 잔인하고 충격적인 소설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를 읽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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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주의) 인생소설이지만 향기롭게 잔인하고 충격적인 소설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를 읽고

화성에서 온 아이 2024. 5. 8. 13:55
 
향수(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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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파트리크 쥐스킨트
출판
열린책들
출판일
2008.05.20

 

지인이 소설 <향수>를 추천했다. 세상의 모든 냄새를 구분할 수 있고, 만들 수 있는 주인공이 정작 본인 냄새는 가지고 있지 않다는 책의 설명을 듣고 흥미로웠다.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 올려두었다. 예전에 읽은 책 '깊이에의 강요' 작가인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장편소설이다.

2023.04.10 - [책읽기] - 내 삶을 살아가는 나의 태도는 어떠한가, "깊이에의 강요"를 읽고

 

1949년생 독일 작가인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1985년에 장편소설 '향수'를 발간했다. 발간 시점으로 100년 전인 18세기를 프랑스를 배경으로 했다.

 

책은 주인공 '장 바트스트 그르누이'의 1738년~1767년 동안의 이야기를 담았다. 4부로 나뉜다. 1부는 주인공 그루누이가 향수 제조인이 되는 과정이다. 2부는 냄새가 나는, 사람들이 사는 곳과 멀리 떨어진 동굴 속에서 살다 자신은 체취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내용이다. 이때까지는 재밌긴 하지만 읽는 속도가 더뎠다. 그러나 3부부터 결말까지는 금방 읽었다. 뒷이야기가, 뒷장이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3부는 도시로 돌아온 그루누이가 다시 향수를 제조하고, 결국 모두에게 사랑받는 향수를 제조하는 과정의 내용이다. 마지막 4부는 그루누이의 죽음인데 다소 충격적인 결말이었다.


······대지, 자연, 공기도 마찬가지였다. 한걸음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혹은 숨을 한번 들이쉴 때마다 그것들은 다른 냄새로 채워졌고 다른 냄새로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대지, 자연, 공기라는 두루뭉술한 말로 표현하고 있었다. 냄새로 인지할 수 있는 세계의 풍부함과 언어의 빈곤함으로 인한 모든 이상한 불균형들로 인해서 그루누이 소년은 말의 의미를 포기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에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만 마지못해 말을 사용하였다. - 44p

 

가끔 지금 이 시점의 감정, 상황 등을 표현하기 적당한 단어가 없어 아쉬울 때가 있다. 특히 음식 맛을 표현할 때가 그렇다 생각했다. "맛있다."말고 이 맛을 비슷하게라도 표현하고 싶은데 달다, 쓰다, 고소하다, 짜다, 시다, 맵다 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향수에서 나오는 "세계의 풍부함과 언어의 빈곤함"이라는 표현이 와닿았다. 

 

이제 그는 그녀에게서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녀의 겨드랑이에서는 땀내가, 머리카락에서는 기름 냄새가, 그리고 국부에서는 생선 비린내가 퍼져 나왔다. 최공의 희열감이 찾아왔다. 그녀의 땀은 바다 바람처럼 상쾌했고, 머리카락의 기름기는 호두 기름 같았으며, 국부는 수련 꽃다발의 향기를, 그리고 피부는 살구꽃 향기를 품고 있었다······. - 69p

 

미각만큼 후각도 표현하기 어려운데 이 책은 냄새, 향기에 대한 묘사를 정말 잘했다. 그루누이가 표현한 냄새가 어떤 냄새인지 그려지면서도 맡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사람은 얼마나 섬세하게 향을 맡고 구분할 수 있을까. 

 

그 옛날 파리 마레 거리의 소녀처럼 향기가 근사했다. 그때처럼 향기가 진하거나 풍만한 것은 아니지만 이 소녀의 향은 훨씬 더 섬세하고 미묘할 뿐만 아니라 자연스러웠다. 앞으로 한두 해만 더 성숙하게 되면 이 향기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녀의 향기의 마법에 걸리면 속수무책으로 그녀에게 사로잡히면서도 그 이유조차 제대로 모를 것이 분명했다. 사람들이란 멍청하기 이를 데 없어서 코는 숨 쉬는 데에만 이용할 뿐 모든 것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니 말이다. 
···
아! 그는 이 향기가 갖고 싶었다! 물론 그 옛날 마레 거리의 소녀에게서 향기를 얻을 때처럼 그렇게 허무하고 서투른 방식으로는 안 된다. 그때는 단지 향기를 흠뻑 들이마셨을 뿐, 그 향기를 없애 버린 것이 아닌가. 그렇게는 안된다. - 266p~267p

 

본격적인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가 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드루아트 거리를 따라 두 줄로 된 말이 이끄는 마차가 달려왔다. 경감의 마차였다. 성문을 지난 마차는 드디어 모든 사람들의 눈앞에서 좁은 골목을 빠져나와 처형대를 향해 달렸다. 경감이 이런 방식으로 호송할 것을 주장했다. 그렇지 않으면 사형수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그와 같이 비정상적이고 끔찍스러운 범죄자는 보통과 다른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식이었다. 살인마를 길거리의 시시한 도둑처럼 쇠사슬에 묶어 처형장으로 끌고 와 죽일 수는 없는 게 아닌가. 그랬다면 구경거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안락한 마차에서 끌어내 X자형십자가에 묶는 것, 그것은 정말로 기가 막히게 잔인한 일이었다.
 마차는 처형대와 관람석 사이에서 멈추었다. 하인들이 뛰어내려 마차의 문을 열고 간이 계단을 밑으로 내렸다. ··· 그는 묶여 있지 않았다. 그의 팔을 붙잡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마치 자유로운 사람처럼 그가 마차에서 내려왔다. 359p~360p

 

소설 '향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나는 그루누이가 처형당해 죽을 것으로 예상했다. 마지막 소녀인 25번째 소녀를 죽이고 향수를 완성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이야기가 끝맺을 줄 알았다. 다른 소설들은 결국 완성시키지 못한 채 사라지는 범죄자를 많이 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달랐다.

 

그루누이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향수를 만들었고, 절대적으로 그루누이를 용서할 수 없는 피해자의 아버지마저도 그를 사랑하게 만드는 향을 제작했다. 광장에서 사람들이 그루누이를 사랑하고, 옆사람을 사랑하고, 육체적인 사랑을 서로 갈망하는 장면은 불편하고 놀라웠다. 그리고 나마저도 그 향이 맡고 싶어 소설책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향수 - 어느 살이자의 이야기> 스틸컷

 

2006년에 개봉되고 국내에서는 2007년 볼 수 있었던 영화 향수도 원작 못지않게 잘 만든 영화로 평가받는다. 소설에는 없던 내용이 중간중간 추가됐지만 영화에서의 그루누이를 더 잘 표현했다고 보인다. 영화는 넷플릭스에서도 볼 수 있고 유튜브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요약본으로도 올려뒀다.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18세기 프랑스 생선시장에서 태어나자마자 사생아로 버려진 ‘장바티스트 그르누이’. 불행한 삶 속에서 그의 유일한 즐거움은 천재적인 후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파리에서 운명적인 ‘여인’의 매혹적인 향기에 끌리게 된다. 그 향기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그는 향수제조사 ‘주세페 발디니’의 후계자로 들어간다. 뛰어난 후각으로 파리를 열광시킬 최고의 향수를 탄생시키지만, ‘여인’의 매혹적인 향기를 온전히 소유할 수 없었던 그는 해결책을 찾아 ‘향수의 낙원, 그라스’로 향하게 된다. 마침내 그곳에서 그는 그토록 원했던 자신만의 향수를 만드는 방법을 알아낸다. 한편 ‘그라스’에서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나체의 시신으로 발견되는 의문의 사건이 계속되는데…
평점
7.9 (2007.03.22 개봉)
감독
톰 티크베어
출연
벤 위쇼, 더스틴 호프만, 알란 릭맨, 레이첼 허드 우드, 비르기트 미니히마이르, 사이몬 챈들러, 데이빗 칼더, 샘 더글라스, 브리짓 맥코널, 카롤리네 헤어퍼스, 코리나 하파우치, 페르미 레이자크, 제롬 윌리스, 니코 바이사스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화면 구성 덕분에 이 영화는 2016년 재개봉됐다. 나는 소설책을 읽고 인상 깊었던 마지막 처형대에서의 장면이 보고 싶어 이 영화를 찾아봤다. 다소 충격적이다. 이미 소설로도 불편했지만 여전히 영상으로 봐도 불편했다. "윽- 못 보겠어"라는 느낌보다 "윽- 이럴 수 있을까? 윽- 이게 맞을까? 윽- 이게 뭐지?"란 느낌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향수 - 어느 살이자의 이야기> 스틸컷

 

책을 읽고 책도 주변에 추천하고, 영화도 꼭 보라고 같이 추천하고 있다. 신기하게도 향수라는 영화는 많이 아는데 소설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향수라는 소설은 들어봤어도 다른 유명 작품과 달리 작가 이름은 생소해했다. 이 기회로 나는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내 머릿속에 각인 됐다. 지인은 "향수 같은 책이네, 향수처럼 잔향이 남아서"라고 표현했다. 나의 인생소설이 된 책이다.

 


+ 궁금한 이야기 1

그의 향수가 성공하는 것은 단지 2백 년 전 그 위대한 천재 마우리티우스 프란지파니의 ㅡ 그는 이탈리아 사람이었다! ㅡ 위대한 발견 덕분이었다. 즉, 그가 방향물질은 주정(酒精) 속에 용해된다는 발견했던 것이다. 프란지파니는 향신료를 알코올과 섞어서 그 향기를 휘발성의 액체로 옮기는 방법으로 원래 향기를 지니고 있던 재료에서 향기를 분리해 내고 해방시킴으로써 향기에 영혼을 부여하였다. 한마디로 말해 향기 그 자체를 발견한 사람이었다. 향수를 창조했다고 말할 수 있다. -90p~91p

 

마우리티우스 프란지파니는 실존인물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관련 자료를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우리티우스는 독일 비스바덴의 있는 광장 이름이긴 하나 2005년에 조성된 것으로 보아 1985년에 나온 이 책과는 "독일"이라는 공통점 빼고는 관련성이 적어 보인다. 프란지파니는 플루메리아라고도 불리는 꽃으로 향수 제조에 많이 사용하는 꽃이라고 한다. 섬유유연제와 방향제로도 사용하고 있다.

 

+ 궁금한 이야기 2

우유 꽃에 대한 실제적 작업을 끝내자마자 그는 곧 열성적으로 생명 에너지와 땅과의 거리에 관한 방대한 연구에 매달렸다. 그것은 생명은 땅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때에만 발전할 수 있다는 이론이었다. 그 이유는 땅에서는 생명 에너지를 마비시키고 결국에는 생명 에너지를 완전히 소멸시키는, 소위 <치명적 유동체>라는 독가스가 계속 생성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모든 생명체가 성장을 통해 땅에서 멀어지려고 할 뿐 땅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했다. 생명체에서 가장 가치 있는 부분들, 즉 곡식의 이삭, 꽃봉오리, 그리고 사람의 머리가 그 예라는 것이다. -220p

 

치명적 유동체 이론에 관한 자료도 별도로 없으나 전쟁 전후 이론들을 참고해 작가가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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