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온아의 기록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5·18 이야기를 담은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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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5·18 이야기를 담은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고

화성에서 온 아이 2024. 5. 19. 18:13
 
소년이 온다(10주년 특별판)
2014년 만해문학상, 2017년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수상하고 전세계 20여개국에 번역 출간되며 세계를 사로잡은 우리 시대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출간 10주년을 맞아 특별한정판으로 새롭게 선보인다. 이 작품은 『채식주의자』로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에게 “눈을 뗄 수 없는, 보편적이며 깊은 울림”(뉴욕타임즈), “역사와 인간의 본질을 다룬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소설”(가디언),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문학평론가 신형철)이라는 찬사를 선사한 작품으로, 그간 많은 독자들에게 광주의 상처를 깨우치고 함께 아파하는 문학적인 헌사로 높은 관심과 찬사를 받아왔다. 『소년이 온다』는 ‘상처의 구조에 대한 투시와 천착의 서사’를 통해 한강만이 풀어낼 수 있는 방식으로 1980년 5월을 새롭게 조명하며, 무고한 영혼들의 말을 대신 전하는 듯한 진심 어린 문장들로 5·18 이후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2024년 올해 출간 10주년을 맞이하여 양장 특별판으로 새롭게 옷을 입은 이 작품은 가장 한국적인 서사로 세계를 사로잡은 한강 문학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인간의 잔혹함과 위대함을 동시에 증언하는 이 충일한 서사는 이렇듯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 인간 역사의 보편성을 보여주며 훼손되지 말아야 할 인간성을 절박하게 복원한다.
저자
한강
출판
창비
출판일
2014.05.19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이 떠오른다.

소설 "소년이 온다" 中

 

 

2024년 5월 18일, 책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읽고 5·18민주화운동을 공부했다. 이미 역사, 한국사 시간에 배웠던 사건이다. 다만 그저 텍스트로만 알고 다음 사건으로 넘어가 그저 '하나의 사건'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생각했는데 제대로 잘 알지 못하고 감사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4년에 출판한 책을 10년이 지나고 2024년에 읽었다. 10년 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나는 조금 더 일찍 그날의 사건을 깊게 바라볼 수 있었을까?

 

책 "소년이 온다"는 6장과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마다 초점을 맞춘 인물이 다르고, 서술하는 시점이 다르다. 2장까지 읽었을 때는 동호에 대한 이야기를 "정대"가 말하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1장 : 어린 새 / 초점 인물 "동호", 2인칭으로 서술
2장 : 검은 숨 / 초점 인물 "정대", 1인칭으로 서술(망자의 목소리)
3장 : 일곱개의 뺨 / 초점 인물 "김은숙", 3인칭으로 서술
4장 : 쇠와 피 / 초점 인물 "김진수", "나", 1인칭으로 서술 - "나"의 이름은  나오지 않음
5장 : 밤의 눈동자 / 초점 인물 "임선주", 2인칭으로 서술
6장 : 꽃 핀 쪽으로 / 초점 인물 "동호의 엄마", 1인칭으로 서술
에필로그 : 눈 덮인 램프 / 초점 인물 "윤", 1인칭으로 서술

*글쓴이가 임의로 정리한 내용으로 작가의 의도와는 다릅니다.

 

유튜브를 검색하니 2장의 "정대" 이야기를 망자의 목소리라고 표현했다. 소설이기에 가능한 망자의 시점은 한 문장 한 문장 읽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했다. 각 장마다 사람들을 다르게 한 건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의 시점에서 전달하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살아남은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 기록하고자 하는 사람과 기억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 등등. 그리고 인물관계가 서로 얽혀있는 것은 어쩌면 내 옆에 있는 사람이 관계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내 옆사람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암시이지 않을까.


 

1장 어린 새 32p
너는 눈을 가늘게 뜨고 거리 가운데 쓰러진 수십명의 사람들을 봤다. 네가 입은 것과 똑같은 하늘색 체육복 바지가 얼핏 보인 것 같았다. 운동화가 벗겨진 맨발이 꿈틀거린 것 같았다. 네가 뛰쳐나가려는 순간, 입을 막고 떨던 아저씨가 네 어깨를 붙들었다. 동시에 옆 골목에서 청년들 셋이 달려나갔다. 쓰러진 사람들의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 막 일으키려 했을 때, 광장 중앙의 군인들 쪽에서 연발 총성이 터졌다. 맥없이 청년들이 쓰러졌다. ···
 지금 나가면 개죽음이여
1장 어린 새 34p
 어딜 쏘댕기다가 오냐. 느이 엄마가 너 들어왔는지 물어볼라고 몇번 전화했는지 아냐. 데모하는 데는 근처도 가면 안된다이. 간밤에 신역에서 총을 쏴갖고 사람이 죽었다드마는······ 말이 안되제. 맨주먹으로 총을 어떻게 당한다냐.
너는 익숙한 동작으로 발을 바꿔 아버지의 척추와 엉치뼈 사이를 조심조심 밟았다.
 아이고 거기, 그래 거기다······ 시원하다.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동호가 아버지의 허리를 밟아주는 모습이 계속 머리에 남는다. 정대를 놓은 동호. 데모하는 곳에 동호와 정대가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부모님. "거기"라는 표현과 "시원"하다는 표현이 뭐랄까. 친숙하게 느껴지는 가정의 장면인데 데모와 동떨어져 있는 가정의 모습이면서도 이 책이 이 사건(거기)을 다루는(시원) 것을 말하는 것만 같았다.

 

 

1장 어린 새 45p
눈이 더 나빠져 가까운 것도 흐릿하게 보이면 좋겠다고 너는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흐릿하게 보이지 않는다. 무명천을 걷기 전에 너는 눈을 감지 않는다. 피가 비칠 때까지 입술 안쪽을 악물며 천을 걷는다. 걷은 다음에도, 천천히 다시 덮으면서도 눈을 감지 않는다. 달아났을거다,라고 이를 악물며 너는 생각한다. 그때 쓰러진 게 정대가 아니라 이 여자였다 해도 너는 달아났을 거다. 형들이었다 해도, 아버지였다 해도, 엄마였다 해도 달아났을 거다.

 

 

4장 쇠와 피 110p~111p
하지만 계엄군이 시내로 진입했다는 무전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그제야 긴장이 되었습니다.
상황실장이 복도로 김진수를 불러낸 건 자정 무렵이었습니다. 여자들을 호위해 도청 밖으로 데려다주라는 상황실장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회의실 안까지 들렸습니다. 상황실장이 김진수를 지목해 그 일을 맡긴 건, 유난히 가냘프게 생긴 그 친구가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에서였을 거라고 나는 짐작했습니다. ···
그러나 짐작과 달리 그는 삼십분이 채 지나지 않아 돌아왔습니다. 나갈 때와는 달리 긴장이 완전히 풀린 얼굴이었습니다. 밀려오는 졸음은 견딜 수 없는 듯 가늘게 뜬 눈으로 총을 벽에 세워놓더니, 창 아래 놓인 인조가죽 소파에 모로 누워 잠들어버렸습니다. 내가 흔들어 깨우자 신음하듯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조금만 잘게요.
이상한 일은,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도 별안간 기운이 빠진 듯 벽에 기대앉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둘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습니다.

 

계엄군이 시내로 진입했다는 무전을 들었을 때 그때의 긴장감을 과연 내가 상상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도청 밖으로 데려다주라고 할 때의 긴장감과 어쩌면 그대로 안 돌아와도 되는데 돌아왔을 때의 갈등 혹은 용기.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극도의 긴장감이 풀려버린 진수.

 

4장 쇠와 피 110p~111p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4장 쇠와 피 126p
그러나 자신의 손으로 모든걸 무너뜨려 다시 혼자가 되는 비슷한 경로를 거울 속 일그러진 얼굴처럼 지켜보는 사이 십년이 흘렀습니다. 하루하루의 불면과 악몽, 하루하루의 진통제와 수면유도제 속에서 우리는 더이상 젊지 않았습니다. 더이상 누구도 우리를 위해 염려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자신조차 우리를 경멸했습니다. 우리들의 몸속에 그 여름의 조사실이 있었습니다.

 

1980년 5월 18일. 44년 전에 일어난 일로 아직 그때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으나 우리는 마치 먼 옛날의 사건처럼 바라본다. 그들이 겪은 그 기억을 우리가 감히 잊으라고, 극복해 내라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라고 왈가왈부할 수 있을까. "더 이상 누구도 우리를 위해 염려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았습니다."처럼 우리는 큰 사건들을 너무 잘 잊고 이제 괜찮아졌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

 

4장 쇠와 피 135p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이 책을 읽고 5·18 기념재단에서 "5·18 열흘간의 항쟁"을 천천히 읽었다. 쳇바퀴처럼 살아가는 많은 현대인들에게 10일은 짧게 느껴지는 기간이다. 하지만 이때의 열흘은 어떤 삶이었을까. 전국으로부터 고립된 지역 "광주". 총을 소지하고 있었을 뿐이나 계엄군과 같이 "군(軍)"이라는 표현에 갇힌 사람들. 5월 18일이 모두에게 기억되길 바라며 이 책을 덮었다.

 

이제 영화와 드라마를 보려고 한다. 화려한 휴가(2007), 택시운전사(2017), 오월의 청춘(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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