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온아의 기록

멋있지만 무서운, 영리하지만 위험한 시베리아 호랑이가 사라져 가고 있다.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을 읽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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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지만 무서운, 영리하지만 위험한 시베리아 호랑이가 사라져 가고 있다.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을 읽고

화성에서 온 아이 2023. 3. 10. 14:40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은 멸종 위기에 처한 시베리아호랑이들의 생존을 향한 강렬한 투쟁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감동을 선사한 EBS 다큐멘터리 ‘시베리아호랑이-3代 의 죽음’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다큐멘터리스트 박수용PD의 집념과 도전정신, 끈질긴 열정으로 마주한 블러디 메리라 불리던 한 암호랑이의 가족을 3대에 걸쳐 관찰한 기록을 담고 있다. 우수리(연해주) 원주민의 신일 뿐 아니라 우리 민족의 기상이며, 정신적 상징이기도 한 시베리아호랑이를 찾아 저자는 한 해의 절반은 호랑이의 흔적을 찾아 산맥을 넘고 숲을 헤맸고, 나머지는 땅굴 속에 몸을 숨기고 호랑이를 끊임없이 기다렸다. 매년 수십 마리씩 죽어가며 인간의 손에 멸종의 길을 걷고 있는 시베리아호랑이를 향한 애정으로 생명의 위협과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이겨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시베리아호랑이들의 삶을 더 가까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저자
박수용
출판
김영사
출판일
2011.09.10
시베리아호랑이는 인간의 간섭으로부터 떨어져 자유롭게 살아가려고 하지만, 인간의 도전이 늘 그들을 응전하게 만듭니다.
※ 응전(應戰) : 상대편의 공격에 맞서서 싸움. 또는 상대편의 도전에 응하여 싸움.

  책을 읽기 전 '백두산 호랑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라는 질문을 받았다면 '흠 아마 줄무늬가 있는 멋진 호랑이 가죽과 무서운 맹수' 정도로만 답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책을 읽고 나서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총, 불 등 무기가 없는 맨 몸의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동물'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시베리아 호랑이인 백두산 호랑이가 더 이상 없다는 사실과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적으로 시베리아 호랑이가 사라져 가고 있다고도 말할 것이다.

 

호랑이는 가죽뿐만 아니라 뼈와 살까지 비싼 약재로 팔린다. 그래서 호랑이가 가장 먼저 멸종위기에 몰렸다. 사람들은 동물에게 상업적 가치를 매긴다. 그 가치 순으로 동물은 멸종해간다.
(암호랑이가) 배란하는 2~3일 동안에는 무려 60번 정도의 짝짓기를 한다. 이런 까닭에 사람들은 수호랑이의 생식기를 정력제로 착각해 사고판다. '비아그라'는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로 호랑이를 일컫는 말이다.

  동물이 상업적인 이유로 멸종해간다는 사실은 환경파괴만큼이나 잔인한 이유다. 상위 포식자가 아래 동물을 잡아먹는 것은 먹이사슬구조에서 자연의 섭리라면 상업적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일까. 

 

  설백(어미 호랑이)이 굶주렸던 모양이다. 새끼를 먹여 살릴 사냥감이 부족한 것 같다. 참나무의 해거리가 이 지역 먹이사슬에 큰변화를 가져왔다. 사슴과 멧돼지는 도토리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떠나갔고, 남아 있는 발굽동물들은 나무껍질을 벗겨 먹으며 연명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밀렵에 나서고 있다. 일자리는 없고 먹고는 살아야 한다. 전문밀렵꾼들도 점점 늘고 그들이 도시에서 데려와 부려놓는 관광밀렵꾼들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기승을 부리는 밀렵으로 그나마 남아 있는 사슴과 멧돼지의 수가 속수무책으로 줄고 있다. 백두산사슴은 이제 이 해안지역에서 완전히 사라졌고 우수리사슴과 멧돼지도 발자국 보기가 힘들어졌다. ···
  처참한 현실 앞에서 늙은 산지기는 분노하고 있었다. 한때 밀림이라고 불렸던 이곳은 이젠 밀렵의 천국이 되었다. 350여 마리밖에 남지 않은 시베리아호랑이가 매년 수십 마리씩 죽어가고 있다.

  호랑이가 멸종되는 것과 인간의 삶 과연 관계가 없을까? 호랑이가 멸종되더라도 우리는 지금과 같은 삶을 유지할까? 대체할 무언가를 찾으며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 횡포의 끝은 어디일까.


 

호랑이 같은 육식동물은 단거리를 빠르게 달리는 순발력이 좋은 대신 장거리를 지속적으로 달리는 지구력은 모자란다.
새끼 수컷은 아들이기도 하지만 미래의 경쟁자이기도 하다. 수호랑이는 암호랑이와 달리 아들이나 형제와도 영토를 나누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끼들 중 수컷은 자랄수록 아버지와 갈등관계에 놓이게 된다. 부자 간의 혈연관계보다 수컷 대 수컷 간의 경쟁관계가 강해지는 것이다.

  수컷과 수컷 간의 경쟁. 상상만으로도 긴장되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한 편으로는 멸종해 가는 중인데 호랑이들끼리라도 협업하여 서로 다치게 하거나 죽이게 하지 않았으면 하지만 이 모든 생각이 호랑이의 습성과 호랑이와 자연과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나의 어리석음인 건 아닐까 되돌아봤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육식동물의 사회적 자제력에 대한 글이 책의 뒷부분에 나왔다.

 

  왕대의 시선이 거두어진 순간부터 나 자신은 이미 초라해져 있었다. ···
  오히려 '거리'를 느낀다. 넘어서도 안 되고 멀어져서도 안 되는 일정한 선이 느껴진다. 호랑이가 그 거리를 유지하고 있고 나도 그것을 유지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든다. 그 다음 '경거망동 하지 말자, 자제하자'라는 속삭임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퍼진다. 자제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덤벼들 것 같다. '거리와 자제력'. 산에서 호랑이를 만나면 이 두가지를 제일 먼저 느낀다. 그 느낌을 행동으로 지키고 나면 우연히 마주친 호랑이와 무사히 헤어질 수 있다. ···
  강력한 무기를 가진 육식동물들이 사회적 자제력을 발휘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만약 자제력을 발휘하지 않고 사사건건 싸워 우열을 가린다면, 그 강력한 힘과 무기로 인해 그 종은 멸종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한 동물일수록 사회적 자제력이 발달하고, 사회적 자제력이 강할수록 다른 강자와도 일정한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둔다. 일종의 핵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야생호랑이들이 서로에게, 그리고 인간에게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
  자제력과 거리 두기는 기본적으로 야생성에서 나온다. 길들여졌거나 갇혀서 자란 개체는 이 능력이 퇴화한다. 동물을 복원할 때는 이 점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인간과 거리를 둘 줄 알고 자제할 수 아는, 야생성이 살아 있는 개체 확보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책에서 발췌한 위 내용은 내가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 읽으며 가장 오랜 시간 머물렀던 부분이다. 사람들이 개입해서 동물을 복원한다는 말이 과연 맞는 말일까? 사람들이 시베리아 호랑이가 사는 환경을 복원하기 위해 무인총이나 일반인 출입 금지를 제한을 엄격히 함으로써 개입을 하지 않기 위해  빠지는 것이 더 나은 방향이지 않을까.


 

물의 정령에게는 숲의 것을, 숲의 정령에게는 물의 것을 고수레한다. 숲의 것을 숲의 정령에게, 물의 것을 물의 저령에게 바치면 동족을 먹는 것이 되어 정령들에게 큰 실례가 된다.
※고수레 : 음식을 나누는 의식으로 인간뿐만 아니라 인간이 아닌 대상에게 나눠주는 것도 포함한다.

  이 책이 흥미로웠던 것은 비단 호랑이 이야기뿐만 아니라 우수리 원주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원주민들의 모습을 담은 책을 접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다시 한번 '지금까지 다양한 책을 읽지 못했구나'라 생각했다.

 

모든 자취는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진다. 바람은 자취를 쓸어버리고 비는 자취를 씻어버리며 눈은 자취를 덮어버린다.
간단한 조사만 마치고 일부로 큰소리를 내며 넓은 강가로 물러났다. 강을 따라 내려가며 우리가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자연은 눈으로 다 볼 수도 없고, 다 보아야 할 필요도 없다.
숲에서 생명이 쓰러지면 다른 생명들이 문상객으로 찾아온다. 까마귀가 찾아오고 독수리가 찾아온다. 다음으로 너구리가 찾아오고 오소리가 찾아온다. 마지막으로 개미와 송장벌레가 찾아와 뒤처리를 한다. 이들의 문상이 끝나면 쓰러진 생명은 숲으로 고요히 녹아든다. 문상객이 찾아오지 않으면 쓰러진 생명은 자신을 숲으로 돌려보낼 생명을 스스로의 내부에서 길러낸다.
과거와 미래라는 두 영원이 마주치는 순간마다 생명없는 질서는 생명 있는 무질서와 손을 잡는다. 유한과 무한을 구분할 수 없듯이, 삶과 죽음은 자연현상일지도 모르겠다.

  저자인 '박수용' 선생님을 '前 다큐멘터리 감독'이라고 제한하는 것을 실례이지 않을까. 이 책에서 자연에 대한 묘사는 구체적이었으며 자연에 대한 표현은 문학작품보다 아름다웠다.


 

  책을 다 읽고 지은이(저자)에 대한 소개를 다시 읽었다. '자연은 연출이 아니라 관찰의 대상'이라고 말하는 박수용 선생님의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에서 나온 촬영 영상도 찾아봤다.

EBS 자연 다큐멘터리_시베리아 호랑이 3대의 죽음

  4K의 다큐멘터리가 많은 요즘 관점에서 봤을 때, 오래된 다큐라는 점에서 선뜻 재생까지 이어지기 쉽지 않다. 그렇지만 책을 완독한 후 이 영상을 보니 책의 묘사에 의존해 상상만 하던 장면을 실제로 볼 수 있어 더 슬펐다. 추가로 지금 wavve에서 "시베리아 호랑이"를 검색하면 BBC에서 2013년에 방영한 시베리아 호랑이 다큐를 볼 수 있다. 박수용 저자가 찍은 다큐와 시청 후 보는 것을 추천한다.

우리 사회에는 무엇인 진실로 바람직한가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선망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더 염두에 두는 풍조가 있습니다. ··· 감자가 없면 감자 칩을 만들 수 없는데도 감자를 재배하는 농부가 제일 가난합니다.

 

  최근에 에버랜드에서 박수용 작가를 인터뷰한 영상이 있다. 현재의 박수용 작가 이야기와 시베리아 호랑이 보호활동에 대해 들을 수 있는 영상이니 보면 좋을 듯하다.

야생 호랑이와 아이컨택한 사연은..? 에버랜드 #박수용작가 인터뷰 #호랑이보전캠페인

 

나만의 한줄평

"나는 동물원에서 본 호랑이 외에는 호랑이를 직접 보지 못했다. 나는 호랑이를 알고있다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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