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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사랑한 화가 이중섭의 생애.《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 전시관람 후기 본문

관람 후기/전시관람

가족을 사랑한 화가 이중섭의 생애.《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 전시관람 후기

화성에서 온 아이 2023. 3. 16. 17:00

  '이중섭' 화가 이름을 듣고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작품은 황소였다. 미술 교과서에도 그랬고, TV에서도 대표작 하나를 꼽으라면 황소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어떤 화가든 작품이든 관심 있게 보지 못하면 이름과 작품만 연결되고 끝난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제주도에 있는 "이중섭미술관"을 방문한 이후로 '이중섭' 화가를 생각하면 '가족' 키워드가 떠올랐다. 천진난만한 아이들, 물고기와 게와 함께 노는 아이들 그리고 아내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내가 만난 이중섭이었다. 이번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진행하고 있는 특별전을 방문했다. 23년 4월 23일까지로 평일에 다녀왔다.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가족' 은지화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은 삼성그룹 고(故) 이건희 회장의 유족에게 2021년 4월 기증받은 1,488점 중 이중섭의 작품 90여 점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이중섭 기소장품 10점을 모아 100여 점으로 구성한 전시다. 배우 고두심의 음성 재능기부로 전시장 입구 앞 QR코드를 통해 무료로 오디오가이드를 들을 수 있으며, 홈페이지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전시에서는 이중섭의 작품세계를 1940년대와 1950년대로 나누었다. 1940년대는 일본 유학 시기부터 원산에 머무를 당시 작업한 연필화와 엽서화를, 1950년대는 제주도, 통영, 서울, 대구에서 그린 전성기의 작품 및 은지화, 편지화 등으로 구성됐다. 

 

국립현대미술관

#100. 전시 인사말 관람객 여러분, 반갑습니다. 배우 고두심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의 두 번째 전시로 기획된 이중섭 특별전 안내를 맡아 이렇게 여러분께 인사드리게 됐습니다.

www.mmca.go.kr

 
  전시 후기에 앞서 이중섭은 1916년 평남 평원군에서 부농의 3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1931년 오산고등보통학교에 입학 후 미술담당 교사였던 임용련에게 미술 지도를 받았다. 임용련은 미국 예일대에서 미술공부를 했고, 파리에서 활동한 인물로 이중섭에게 습작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했고 이중섭은 이에 영향을 받아 다수의 드로잉을 남겼다.
   이중섭의 본격적인 미술공부는 1936년 일본 도쿄 교외에 위치한 일본 동경 사립 제국미술대학에 입학한 후 시작됐는데, 1937년에는 동경의 3년제 사립 문화학원에 입학하여 1938년에 열린 '제2회 자유미술가협회 공모전'에 5점의 작품을 응모해 입선했다. 그 이후로도 다양한 공모전, 전시에 작품 출품을 지속했다.
  무엇보다 1939년 문화학원 후배인 일본 여성 야마모토 마사코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1941년까지 도쿄 문화학원에서 공부하며 활발하게 활동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였던 1944년 이중섭은 학교를 졸업하고 원산으로 돌아왔다. 야마모토 마사코는 1945년 이중섭을 찾아왔고 그와 원산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남쪽에서 온 덕이 있는 여인'이란 뜻의 이남덕(李南德)이라는 한국 이름을 지어줬다. 1946년에 첫 아이가 태어났지만 곧 디프테리아로 잃었고 1948년에 아들 태현이, 1949년에는 차남 태성이 태어났다.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회화ㅣ아이들' 설명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이중섭과 그 가족들은 1951년 서귀포 피난을 가 약 1년간 거주했다. 원산에서 피난길에 나서면서 이중섭은 함께 피난 가지 못하는 어머님의 손에 자신이 그린 많은 작품들을 건네주고 왔다. 서귀포에서 정착한 1.4평 정도의 작은 방은 1997년 복원되었다. 그리고 2022년 이중섭 거주지 인근에 이중섭전시관을 개관했다.
  1952년 끝나지 않는 전쟁으로 이중섭은 부인과 두 아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내고, 1952년부터 1955년 말까지 야마모토 마사코와 두 아들에게 많은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 두 아들의 학교생활, 1955년 개인전을 준비하는 과정, 일본으로 건너가기 위한 노력 등이 기술되어 있다. 그림과 다른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이중섭은 1953년 일본에 가서 가족들과 상봉했으나 일주일 만에 귀국했고, 그 만남이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1956년 거식증 증세가 나타난 이중섭은 영양부족과 간장염으로 9월 6일 서대문 적십자병원 무료병동에서 지켜보는 사람 없이 만 40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무연고자로 취급되어 사흘간 시체실에 방치되었다가 병원을 찾아온 친구에 의해 친지들이 화장하여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1957년 3월 15일부터 24일까지 《화백 이중섭 유작전》이 열렸는데 사후 첫 개인 작품전이었다. 이후 이중섭 전시는 지속적으로 열렸고, 사랑받았으며 2016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이중섭 탄생 100주년 기념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을 개최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설명

  이중섭은 '한국의 국민화가', '비운의 천재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야수파적인 강렬한 색감과 힘찬 선묘 위주의 독특한 조형은 서구적인 방법을 차용했지만, 주제에서는 향토성이 강하게 묻어난다. 이런 이중섭의 예술세계의 기반은 그림으로 생계를 이어가고자 했던 그의 예술가적 삶에 연유한다. 일정한 거처 없이 전국을 떠돌며 외롭게 제작한 그의 작품은 1970년대에 이르러서 새롭게 평가를 받게 된다. 1970년대 이후 이중섭에 관한 전시, 영화, 연극 소설 등이 구준히 만들어지면서 오랜 시간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이중섭의 작품 중 은지화는 담배를 포장하는 알루미늄 속지에 철필이나 못 등으로 윤곽선을 눌러 그린 다음, 검정 또는 흑갈색 물감이나 먹물을 솜, 헝겊 따위로 문질러 선이 도드라지게 보이도록 했다. 은박지 종이의 광택과 음각 선에 묻혀 들어간 짙은 선이 생기도록 한 일종의 선각화라고 할 수 있다. 은지화에도 이중섭이 자주 그렸던 게와 물고기, 아이들, 가족 등의 소재들이 등장한다.
  이중섭의 은지화를 처음 미국에 알린 사람은 아더 맥타가트(Arthur. J. Mctaggart)로 당시 대구 미구미문화원 책임자였다. 맥타가트는 이중섭 개인 전시회에서 3점의 은지화를 구입해 뉴욕근대미술관(MoMa)에 기증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이중섭 '꽃과 어린이와 게'

  다시 전시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가족을 사랑하는 이중섭을 알고 보니 전시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처음 전시를 봤던 서귀포 이중섭미술관에서는 황소 그림이 없어 아쉬웠는데 이번 전시에도 황소 작품은 없었지만 아쉽지가 않았다. 오히려 엽서화, 은지화, 편지화 등 가족적인 그림을 많이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예술의 전당이나 DDP 등 오디오가이드는 유료인 반면 이번엔 무료로 진행되어 작품 하나하나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아는만큼 보인다"라고 하는데 이번 전시는 충분히 이중섭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어 모르는 상태로 가더라도 재밌을 전시다. 월, 화, 목, 금, 일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는데 수, 토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야간도 운영한다. 그리고 입구에 무료로 물품보관함이 있어 관람에 집중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이중섭 '표지화'

  이중섭의 그림이 교과서 표지가 된 건 알고 있지만 전문적으로 표지화를 그렸다는 건 이번 전시를 보고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특히 내가 흥미롭게 읽었던 '에드거 앨런 포' 소설의 표지화를 제작했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에드거 앨런 포는 1809년에 출생해 1849년까지 공포/추리 단편선을 출판한 소설가인데 1954년 표지화를 그린 이중섭과 조금 더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이중섭 '손과 새들'

  개인적으로 '손과 새들' 작품 앞에 오래 머물렀는데, 손으로 새를 보듬거나 품어주는 것 같고 한편으론 새를 멀리 떠나보내는 것 같이 보여졌기 때문이다. 전시 작품을 볼 때면 항상 유명한 작품 외에도 걸음을 멈추게 하는 몇 작품이 있는데 이번 전시 작품은 '손과 새들'이었다. 1950년대 초반에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아트샵에서 혹시나 이와 관련된 굿즈를 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아쉽게도 판매되는 작품은 내가 희망하는 작품이 아니었다.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전시기간. 아직 가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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